스승의 날이 다가오고있다. 떠들기

나야 뭐 이제 학생도 아니고, 아직 학부모도 아니니 스승의 날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그래도 스승의날 즈음 해선 모교의 막장 선생들이 생각난다.

엄마가 치과 의사였던 내 친구.
어느날 그 친구가 교무실에 불려갔다. 부른 선생은 담임도 아니고, 내 기억엔 우리 학년의 다른 반 담임이었던 것 같지도 않고 아무튼 국사과목 담당으로 일주일에 한 번인가 두 번 정도 수업하러 들어오는 그런 선생이었다.

그 선생이 친구에게 한 말.

"내가 이가 안 좋다. 근데 돈이 없다."

친구가 그 얘길 해주면서 근데 이런거 한 두번 겪는게 아니라서 아무렇지도 않다고, 중학교때도 자기 담임했던 사람이 가족들 다 끌고와서 엄마 병원에서 치료받고 갔다고 그랬다.

문제는 내가 나온 고등학교 - 모교라고 부르고 싶진 않고 그냥 모(某)고교 라고 하고싶다 - 선생들의 일반적인 수준이 저랬다는거다. 인성이 글러먹었어. 그렇다면 가르치는 기술이라도 괜찮았느냐? 하면 한숨 한 번 내쉬고, 하늘 한 번 봐주고. 
임용고시를 치르지 않은, 혹은 도전은 했지만 합격하진 못한 지방의, 거기에 교육열이 높지 않은 사립학교 선생들의 수준은 글쎄다. 가끔 똑똑한 애들이 어려운 문제 들고가서 물어보면 자기도 못풀까봐 겁나지 않았을까?



국민학교 3학년 때 옆분단에 앉던 친구가 상자 가득 머리삔과 방울을 담아가지고 학교에 가지고 왔다.
자기네 집이 문방구를 하다가 그만뒀는데 그때 팔던 것들이라며 애들에게 자랑하고 친한 애들에게는 하나씩 나눠주기도 했다.
쉬는시간에 어쩌다가 담임도 그 상자를 보게 되었는데 그 아이에게 묻지도 않고 예쁜 삔들을 꺼내가는거였다. 친구는 당황하는 것 같았지만 그 시절 국민학생들에게 선생님이란 거의 절대자에 가까운 존재였으니 아무말 못하고 보고 있었다.
쉬는시간이 끝나고 담임은 수업을 하다가 애들한테 산수익힘책 문제를 풀라고 시켰다. 그리곤 교실을 둘러보다가 그 친구 자리로 가더니 다시 그 머리삔 상자를 꺼내라고 했다. 그러더니 또 한번 머리삔 갈취. 결국에 그 친구는 수업이 끝난 후 책상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그 선생의 딸은 우리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그 선생의 제자 머리삔 두 번 삥뜯기는 그 친구에게도 상처를 남겼겠지만 옆에서 보고 있던 나에게도 상당한 충격이었던 것 같다. 한 주먹 가득 삔을 쥐고 다른 손으로 상자를 뒤적뒤적 거리던 그 선생의 행동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기억나는 거 보면.



두 아이의 학부모인 사촌언니는 전형적인 강남 엄마다.
큰 조카는 사립초등학교에 넣었고, 그것도 입학 추첨때는 떨어져서 2학년때 기부금을 내고 전학시켰다.
언니는 종종 학교에 갔다, 촌지를 들고.
큰 조카는 애 다운 맛이 좀 없지만 모범생이고 공부도 잘 해서 굳이 선생님한테 돈까지 줘가면서 잘 봐달라고 할 필요가 있느냐, 그러지 않아도 선생님이 좋아할 만한 애이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선생님에 따라서 다르긴 한데 이번 선생님은 줘야한다고 그랬다.
금액도 정해져 있단다. 보통 10만원, 산만 15만원. 보통 15, 산만 20 이었나? 아무튼 정해진 금액이 있다고 그랬다. 그래도 우리 애는 산만하진 않아서 좀 적게 줘도 된다고.
학기초에 한 번만 주는게 아니라 주기적으로 가서 주고 와야된다고, 엄마들끼리는 그런걸 "약 치러 간다."라고 한다고 그랬다. 약빨 떨어졌으니 약 뿌리러 가야된다고.
금쪽같은 내 새끼가 볼모로 잡혀있으니 엄마들이 그렇게 돈을 상납하지만, 사실 해충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선생들은 모르나보다.
아니, 알면서도 당장 손에 들어오는 돈을 거부할 수 없는걸 수도 있다.

어느쪽이든 해충이긴 마찬가지.

사촌 언니처럼 극성인 엄마들이 촌지받는 교사를 만드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안 받는 선생님들은 안 받더라.
조카의 4학년인가 5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 그랬다.

특히나 초등학교 교사들은 말랑말랑하고 깨끗한 마음과 머리를 다루는 만큼 주는 촌지를 거절할 수 있을 정도의 정의감과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어야 할텐데 그렇지 않은 선생들도 많은 것이 화가 난다.


다행인것은 나는 학부모가 아니라는 것,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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